짜파구리(램돈) — 기생충이 만든 세계적 음식 현상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친 짜파구리는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영화 속 짜파구리에 한우를 올리는 장면의 계급적 상징, 레시피, 그리고 오스카 이후의 글로벌 열풍까지.

에디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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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한 그릇에 담긴 계급의 맛

영화 한 편이 음식 하나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 드문 일을 해냈다. 짜파구리 —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쳐 만든 이 소박한 라면 요리는 기생충 개봉 이후 전 세계적인 음식 현상으로 부상했다.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직후, 구글에서 'ram-don recipe'와 'jjapaguri'의 검색량이 폭발적으로 급증했으며,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해외 아시안 마켓에서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짜파구리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인기를 넘어선다. 봉준호 감독이 이 음식을 영화에 등장시킨 이유, 그리고 그 위에 한우 채끝살을 올린 이유에는 기생충의 핵심 주제인 계급 갈등이 농축되어 있다. 한 그릇의 라면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말할 수 있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짜파구리란 무엇인가

짜파구리는 농심의 두 가지 인스턴트 라면 제품인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쳐 만든 퓨전 라면이다. 짜파게티의 달큰한 짜장 소스와 너구리의 얼큰한 해물 국물이 만나면, 예상 외로 조화로운 맛이 탄생한다. 짜파게티의 부드러운 면과 너구리의 쫄깃한 굵은 면의 식감 차이도 재미를 더한다.

짜파구리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군대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군대에서는 제한된 식재료로 다양한 맛을 만들어내는 '군대 레시피'가 발달했으며, 짜파구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조합이다. PX에서 구할 수 있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쳐 만드는 이 요리는 군 복무 중인 장병들 사이에서 인기리에 전해져 왔다.

봉준호 감독 역시 이 조합을 일상적으로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짜파구리를 핵심 소품으로 선택한 것은, 이 음식이 가진 '서민적 정체성'이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속 짜파구리 장면 — 8분의 긴장

기생충에서 짜파구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이 되는 폭우의 밤에 위치한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사이,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저택에서 먹고 마시며 호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캠핑장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박 사장 가족이 갑작스럽게 귀가하게 된다.

이때 연교(조여정)는 운전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짜파구리를 만들어 달라고 가정부 충숙에게 전한다. 단, 한우 채끝살을 올려서. 충숙은 급히 짜파구리를 만들기 시작하고, 동시에 기택과 기우, 기정은 박 사장 가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어야 한다.

이 시퀀스에서 짜파구리를 만드는 8분이라는 시간은 극적 긴장의 시한폭탄으로 기능한다. 충숙은 라면을 끓이면서 동시에 기택 가족의 도주를 도와야 하고, 라면이 완성되기 전에 모든 흔적을 지워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요리 과정의 실시간적 긴박함을 서스펜스의 장치로 활용하며, 관객은 라면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계단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사이에서 숨을 죽이게 된다.

한우 채끝살의 의미 — 계급의 토핑

짜파구리 장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디테일은 '한우 채끝살'이다. 짜파구리는 본질적으로 서민 음식이다. 짜파게티 한 봉지에 약 1,000원, 너구리 한 봉지에 약 1,000원, 총 2,000원이면 만들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한 끼다. 그런데 연교는 이 서민 음식 위에 1만 원이 넘는 한우 채끝살을 올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 디테일은 기생충의 계급 갈등을 한 접시 위에 압축한 천재적인 장치다. 부유한 연교에게 짜파구리는 '재미있는 간식'이며, 한우 채끝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업그레이드다. 하지만 기택 가족에게 짜파구리는 생존을 위한 식사이며, 한우는 사치의 영역이다. 같은 음식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며, 그 차이가 바로 계급의 차이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장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자들은 서민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전유합니다. 그들에게 짜파구리는 '귀엽고 재미있는' 음식이지, 생활의 절박함에서 나온 음식이 아닙니다." 이 관찰은 현대 사회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빈곤의 미학화(aestheticization of poverty)' 현상과 맞닿아 있다.

영화 자막의 도전 — 짜파구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기생충이 해외에 배급될 때, 짜파구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는 자막 팀에게 상당한 도전이었다. 짜파게티(짜장면 스타일의 인스턴트 라면)와 너구리(해물맛 라면)를 합친 조어인 짜파구리를 직역하면 외국 관객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영어 자막에서는 'ram-don'이라는 번역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ramen'과 'udon'을 합친 조어로, 원어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두 가지 면 요리를 합쳤다'는 개념을 서양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해결책이었다. 이 번역에 대해서는 논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ram-don'은 기생충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오스카 이후의 글로벌 열풍

2020년 2월 9일,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직후, 전 세계적으로 짜파구리 열풍이 불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ram-don recipe' 검색량은 수상 직후 24시간 동안 평소 대비 약 3,000% 급증했다.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주요 영어권 국가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판매량이 급증했으며, 일부 아시안 마켓에서는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농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카데미 수상 직후 농심 미국 법인은 짜파구리 레시피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고,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적극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담은 '짜파구리 세트'를 해외 시장에 한정 출시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 BBC,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언론은 짜파구리 레시피와 함께 이 음식이 영화에서 갖는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기사를 연이어 게재했다. 짜파구리는 단순한 라면 레시피를 넘어,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입구가 된 것이다.

짜파구리 레시피 — 기본편과 영화편

짜파구리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본 레시피와 영화 속 한우 버전을 모두 소개한다.

기본 짜파구리

재료: 짜파게티 1봉지, 너구리 1봉지, 물 600ml

  1. 냄비에 물 600ml를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짜파게티 면과 너구리 면, 너구리 건더기 스프를 함께 넣는다.
  3. 면이 익으면 물을 종이컵 2~3컵 분량만 남기고 버린다.
  4. 짜파게티 분말 스프와 올리브유, 너구리 분말 스프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5. 접시에 담아 완성한다.

영화 속 한우 짜파구리

재료: 짜파게티 1봉지, 너구리 1봉지, 한우 채끝살 150g, 소금·후추 약간, 식용유 약간, 물 600ml

  1. 한우 채끝살을 한입 크기로 썬다. 소금, 후추로 밑간한다.
  2.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한우를 강불에서 겉면만 빠르게 구워낸다. 속은 미디엄 레어 정도로 남겨둔다.
  3. 기본 짜파구리를 위의 방법대로 만든다.
  4. 접시에 짜파구리를 담고, 구운 한우 채끝살을 올린다.

포인트는 한우를 너무 오래 익히지 않는 것이다. 짜파구리의 강한 양념과 대비되는 한우의 부드러운 육즙이 이 요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짜파구리 이후 — 음식과 영화의 관계

기생충의 짜파구리 현상은 영화가 음식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의 극단적 사례다. 물론 이전에도 영화 속 음식이 화제가 된 사례는 있었다. '줄리 앤 줄리아'의 뵈프 부르기뇽, '라따뚜이'의 라따뚜이, '리틀 포레스트'의 계절 요리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짜파구리처럼 전 세계적인 소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짜파구리의 성공은 K-컬처의 소프트 파워가 음식 영역까지 확장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짜파구리의 가장 큰 의미는 여전히 영화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2,000원짜리 라면 위에 올려진 1만 원짜리 한우. 그 부조화 속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한 접시로 요약했다. 우리가 짜파구리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그 맛 속에는 기생충이 던진 질문이 함께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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